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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화 예술

[책추천] 안목의 성장. 이내옥. 민음사. (2018)




지인에게 추천받아 교토 여행을 계획하며 여행하며 읽으려 고른 책. 무더운 날씨와 꼬이는 일정 등 각종 돌발상황 덕분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몇십 쪽을 읽고 일상 속에서 읽는 이 책은 처음 생각했던 ‘여행지에서 읽을 가벼운 책’이 아니었다. ‘안목의 성장’의 저자 이내옥은 한국 미술사 연구와 박물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아시아파운데이션 아시아미술 펠로우십을 수상한, 34년간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한 우리나라 박물관 발전에 이바지한 상당히 유명한 분이었다. (책날개 참고)

이 책은 백제 역사나 윤두서, 정약용 등의 학문적 가치나 예술성을 알리는 책이라기보다는 ‘박물관에서 반평생을 보낸 사람 이내옥의 이야기’책이다. 비슷한 아우라를 가진 책으로 ‘문장의 온도(다산초당, 이덕무, 2018)’와, ‘내가 사랑한 백제(다산초당, 이병호, 2017)’가 있다. 책 세 권의 느낌이 비슷하지만 이내옥의 책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받았다. 역사와 미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깊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이 짧은 글 하나에도 느껴져 이런 사람들이 지키는 박물관이라면 믿을만하겠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교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었더라면 좀 더 깊은 감흥을 느낄 수 있었겠지만 다녀와서 읽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여행하는 동안은 그 순간에 집중하느라 이내옥의 글을 깊이 공감하며 읽지 못했을 것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느끼는 기분, 이 순간이 좋다. 우리 것을 지키는 사람의 소중한 마음과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던 울림이 있는 책이었다.


나는 무엇 하나에 열정을 다해 본 적이 있던가? 먼 훗날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들을 쌓아 어떠한 지위나 위치에 올랐을 때, 나보다 어린 세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회한만 남고, 앞으로 다가올 날을 바라보면 두려움만 가득한 것이 우리의 삶이다. (6)

무담시, ‘괜히’ 또는 ‘아무런 이유 없이’라는 뜻.
다산과 교유하던 백련사 혜장 스님이 마흔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 ‘무담시 무담시’를 되뇌며 유언 아닌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 나의 뇌리에는 뜻하지 않을 때 이 무담시란 말이 괜히 떠오르곤 했다. 무담시, 무담시...... (29)

이렇게 소박하고 검소하며 집착 없는 고요함을 추구하는 일본 다도에서 배운 것도 없는 천한 조선 장인이 오랜 숙련과 무심한 마음으로 만든 결과물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비록 조선 장인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수행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61)


우리 모두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고귀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가치와 품위를 가지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를 생각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조선의 아름다운 유풍을 그리워한다. (76)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느낌과 정서,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결국 예술이란 인간적이고 인간을 지향한다. (157)

인생이란 뿌리도 꼭지도 없이 바람에 떠도는 티끌과 같다. 도연명의 말이니, 우리네 일생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이 이리저리 날리다가 떨어지는 곳에 하룻밤을 청하는 신세이다. (248)

일본 중세의 승려 요시다 겐코는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고, 비바람 맞지 않고 한가롭게 사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여기에 병의 고통을 참기 어려우므로 약을 포함하여 이 네 가지가 부족함을 가난이라 하고, 네 가지가 부족하지 않음을 부유하다고 하며, 네 가지 이외의 것을 얻으려 함을 사치라고 했다. (250)

다치하라 마사아키, '겨울의 유산'
이 세상 모든 것은 물거품이요 그림자여라.
나, 오늘 이 육신을 벗고 텅 빈 무로 돌아가노라.
옛 부처의 집 앞에는 달이 밝은데,
다만 원적으로 돌아가지 못함을 한할뿐이로다.

우리는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니, 우리 생의 본질은 능동적일 수 없으며 타락적이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가다가 생명이 다하면 먼지로 돌아갈 뿐이다.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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